아퓨다

아퓨다 그러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덧 세상이 내 시야만큼 납작해져 있었다. 
'가성비'라는 말은 종류를 막론하고 모든 물건의 앞에 접두어처럼 따라붙었고 편의점 음식을 
'고급 요리'처럼 만들어내는 TV 프로그램이 나와 있었다. 
두메산골 첩첩산중에 들어가서도 사람들은 '이미 아는 맛'이 나오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식당을 찾았고, 
찾으면 또 어디에나 그게 있었다. 
서점에서는 수상작이나 이미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만 팔려나갔고 
관광지도 명소도 사람이 몰리는 곳만 몰렸다. 
유명한 것과 이미 검증된 것만 소비하는 건 지독한 냄새처럼 빈틈없이 퍼져 있었다. 
실패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상품은 외면당헸고, 
그 외면은 다시 우리의 선택지를 좁히고 주머니를 얇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악순환이 끝없이 이어졌다.
사회의 취향이 질식당하는 걸 바라보는 건 내 일상이 메마르는 것보다 더 서글펐다. 
그게 사람을 서서히 죽인다는 걸 아니까. 천천히, 고통스럽게, 무기력하게 만들다 
어느 순간 사람을 잡아먹고 만다는 걸 아니까 아퓨다
그래서 말하는 거지만, 지금 필요한 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게 아니라 소비에 실패할 수 있는 여유다. 
하나만 고르라고 다그치는 사람보다 천천히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걸 더 골라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고 취향을 사치의 영역으로 넘겨버리기보다, 
가격과 성능과 취향을 함께 고려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굶어죽지 않는 것만을 목표로 살 수는 없다. 
우리가 간신히 먹고살 수만 있는 돈을 받아 온 50년 동안, 
그 나머지 돈을 가진 몇몇이 이 나라를 얼마나 '취향껏' 바꿔놨는지를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한참 여유가 없을 때, 어쩌다 몇 천원 정도의 가욋돈이 생기면 나는 늘 2천원짜리 매니큐어를 샀다. 
매니큐어는 활용도나 실용성을 따지지 않고 오롯이 내 취향만을 기준삼아 고를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빨간색이든 노란색이든 펄이 잔뜩 박힌 흰색이든 상관없었다. 
늘 이제껏 안 사본 색, 그날 유독 눈에 끌리는 색을 사곤 했는데, 
그건 당시 무채색에 가까웠던 일상에서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어떤 색깔이었다. 
내가 그 때를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런 작은 색깔들 때문이라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선택과 취향이란 그런 거다. '가성비', '저렴이'에 대한 강박이 사회를 완전히 질식시키기 전에, 
사람들에게 여유를 조금 더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런 이유다. 아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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